[이제는 작은 호텔의 시대 ②] 서울의 중심에 다시 세운 아버지의 인생 HOTEL 28

아버지와 아들의 명동 해석



한국의 중심부 서울, 그리고 그 서울의 중심부인 명동은 어떤 이들에게는 진한 안타까움을 토해내게 하는 곳이다. 한국에서 가장 비싼 토지가격을 자랑하는 지역, 길거리의 외국인 숫자가 곧 한국 방문 외국인 수의 척도가 되는 관광명소, 일제강점기부터 매 시대를 풍미하며 변화를 이끌던 땅, 문화와 유행의 발원지이기도 한 명동은 여전히 한국의 중심부다.


시대를 반영하는 명동에 대한 문화예술인의 실제 가치와 의미는 매우 강렬하다. 식민지 시대 경성의 메이지좌(明治座)는 광복 후 국립극장, 시공간, 예술극장으로 이름을 바꿔가며 문화예술인의 무대가 됐다. 이곳의 철거가 결정되자 문화예술인의 치열한 반대로 지금의 명동예술극장을 유지하게 되는데 이는 명동에 대한 정서적인 가치가 얼마나 강한 것이었는지 짐작케 하는 일이었다.


명동의 터줏대감인 어느 노배우는 명동이 보여주는 지금의 시대반영 수준이 늘 안타까웠다. 시대의 흐름에 맞춰 명동은 외국인이 찾는 대표적인 관광특구로 지정됐지만 소비의 거리로만 자리할 뿐이었다. 노배우는 명동의 문화적 가치가 외국인은커녕 젊은 한국인에게도 전달되지 못하는 안타까움으로 시대에 필요한 어른의 역할을 고민한다. 그리고 그의 사업가 아들은 명동의 중심에 무모할 수도 있는 도전을 결심했고 그 결과로 세상에 나온 작품이 명동7길 13번지에 자리한 HOTEL 28 Myeong-dong(이하 HOTEL 28)이다.




모든 에너지를 투입해 시동을 걸다

명동은 일본인 관광객이 몰려들기 시작한 1970년대 이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유명호텔들을 탄생시키기 시작했다. 서울로얄호텔, 사보이 호텔, 세종호텔 등은 30만㎡ 내의 명동에서 상징적 호텔 브랜드가 됐다. 하지만 냉정히 말해 역사와 전통의 호텔은 한국의 중심지라는 지리적 가치만큼의 명품 브랜드로 성장하지는 못했다. 게다가 후발 주자로 명동 중심부에 속속 들어선 호텔과 숙박시설은 시장의 기준을 ‘다수’와 ‘저가’라는 키워드로 통일시키고 그것을 명동을 찾는 외국인을 기준으로 삼아 버리는 우를 범하게 된다.


명동의 호텔은 관광객 수준이 낮으므로 무조건 중저가 호텔이어야 하고 적당한 시설과 적당한 서비스만으로 충분하다는 인식이 명동 지역의 호텔산업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런 명동의 호텔에 마치 반기를 들 듯 HOTEL 28은 도전장을 던지기로 한다. 1972년 세워진 금싸라기 건물인 증권빌딩은 그렇게 안정적이고 어마어마한 임대료 수입을 포기하고 2015년 명동을 찾는 외국인에게 자랑스럽게 선보일 호텔로 변모할 대규모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다.


타당성 검토는 만만치 않았다. 한국에서 가장 비싼 땅값을 자랑하는 지역에 호텔을 짓는다는 것은 고려해야 할 상황이 많았다. 공간 한 평을 함부로 낭비해서도 안 되고 어떻게든 호텔의 가치를 시장에서 인정받고 남보다 높은 가격대가 유지해야 했다. 주변의 어느 호텔 건설에서도 볼 수 없던 특별한 팀들로 프로젝트는 구성됐다. 전체 플랜의 기획은 The Hospitality Service의 최영덕 대표가 맡으며 건축주이자 사업의 주체인 신언식 한주홀딩스 코리아 회장의 구상이 펼쳐질 수 있도록 호흡을 맞춰가기 시작했다.


신언식 회장은 과감히 호텔의 인테리어 디자인 파트너로 글로벌 디자인 컴퍼니인 HBO+EMTB를 선택한다. 전체 건축은 송규만 홍익대학교 건축과 교수의 DYNAGRAM이 사이니지를 포함한 외관 디자인을 책임졌다. 협소한 명동거리의 건물과 차별화하고 외국인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켜야 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호텔의 테마인 ‘아버지의 인생’이 곳곳에 고스란히 투영되어야 했다.


HOTEL 28은 호텔 사업의 준비를 위해 모든 시간과 열정을 쏟으며 치열한 과정을 거쳤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디자인과 콘셉트, 영업 방향에 대한 1년여에 걸친 회의는 나중에는 그 횟수를 헤아리다 포기해야 할 정도였다. HOTEL 28은 명동에 좋은 호텔을 만들어 보이겠다는 일념은 결국 2016년 6월 개관으로 이어졌다.




호텔의 근간 ‘아버지의 영화 같은 인생’

호텔의 창업주인 신언식 회장의 부친이자 건축주인 이 호텔의 주인공은 바로 한국 영화계의 최고 어르신으로 통하는 신영균 배우다. 1940년대 연극계에 발을 디디며 무대에 오른 신영균 배우는 특이하게도 서울대학교 치의예과를 졸업한 의사이기도 했다. 무수히 많은 작품에 출연한 한국 영화계의 산증인이며 사업가와 정치인으로서도 인정받았다.


신영균 배우는 그 어떤 호칭보다도 한국의 영화산업에 대한 평생의 애정과 공로로 가장 존경받는 영화인이라는 세간의 칭호가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이다. 그는 일제강점기인 1928년 황해도 평산군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그의 아들은 아버지와 자신의 뿌리가 된 1928년의 의미를 새기고자 호텔명을 28로 결정한다. HOTEL 28이라는 브랜드가 탄생한 배경이다.


호텔의 곳곳에 한국의 영화가 자리해야 했다. U-glass의 자동조명시설로 외벽을 장식해 영화의 스크린 불빛이 명동의 거리를 빛나게 하는 콘셉트를 구현하고 호텔의 입구에 설치된 오래된 영사기로부터 호텔은 영화 같은 공간의 시작을 알린다. 호텔 내 모든 사이니지와 소품은 세심하게 영화와 관련되어 있다. 호텔의 4층에는 신영균 배우의 귀중한 소장품이 전시된 갤러리가 준비됐다.


오래된 한국영화의 포스터, 각종 상패, 에르메스로부터 선사 받은 디렉터 체어 등 나이 든 사람에게는 향수를, 젊은 사람에게는 신기함을 줄 배우 신영균의 인생이 담긴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문화적 공간으로 빛을 발한다. HOTEL 28은 누군가의 인생을 담은 도큐먼트를 바탕으로 지어진 흉내낼 수 없는 시나리오 위에 존재한다. 좋은 호텔이 갖춰야 할 최고의 자산인 진짜 이야기가 바탕이 된 곳이다.




가장 큰 숙제, 차별화

HBO+EMTB는 호텔이 추구하는 독창적이고 영화 속 공간이라는 주제에 주목해 모던 빈티지 스타일이라는 상반된 두 가지 콘셉트의 조화를 시도한다. 고급스러움을 유지하면서도 공간의 독창적 배치와 과감한 자연스러움을 조화롭게 만들어 내야 했다. 3층부터 5층까지 객실이 배치되는 나지막한 호텔이다. 이동인구 밀도가 최고로 높은 명동 행인들의 수다가 들릴 듯한 객실의 위치지만 소음이 무섭다고 창문의 규모를 줄이지는 않았다.


‘명동의 풍광이 곧 문화’라는 판단에서다. 객실의 문을 열고 들어선 걸음을 마중하는 첫 객실 풍경은 욕실로부터 독립적으로 분리된 수전과 객실 전체를 막힘없이 볼 수 있는 파격적인 통유리 욕실, 그리고 깔끔한 스탠딩 욕조의 조화다. 모던하고 파격적인 욕실의 배치에 힘을 실었다면 벽면처리와 가구는 빈티지에 포인트를 맞추며 힘을 뺏다.


고급 실크벽지의 우아함 대신 거친 벽면처리로 부조화의 조화를 꾀했고 마음껏 평수를 확장할 수 없는 명동이라는 지역의 특성상 좁아진 객실을 커버하기 위해 가구는 고급스러움 보다는 자연적인 심플함에 집중했다. 투숙객의 몸에 닿는 모든 소품은 정성이 다해졌다. 침대는 시몬스 베스타가 선택됐고 구스다운의 침구류 역시 거위 털 매트리스 토퍼가 주된 린넨류다. 어메니티도 차별화했다. 디럭스 타입의 각 욕실에 코비글로우 브랜드가 놓였고 코너 스위트 이상은 에르메스 어메니티가 준비됐다.


HOTEL 28의 가장 특별한 방은 ‘Director’s Suite’다. 5성급 호텔의 로얄 스위트와 같이 대규모의 공간을 제공하지는 않지만 특별한 관계인 에르메스 측의 디자인으로 구성해 셀럽이 열광할 필립 니그로의 소파와 엔조 마리의 의자 등 명품 디자인 가구를 객실에서 즐길 수 있다. 콘셉트가 정해지고 그에 따른 전문가의 고민의 과정을 통해 HOTEL 28의 차별화된 디자인은 성공했다. 좀 더 좋은 가구, 비싼 장식으로 객실을 호화롭게 꾸밀 수도 있겠지만 그 것은 선택일 뿐 방향은 아니다. HOTEL 28은 스스로의 힘으로 한국에 흔하지 않은 기본을 갖춘 리얼 부티크 호텔을 시작했다.




작은 호텔 큰 의미

오픈 3년 차에 접어든 아직은 신생호텔 HOTEL 28은 객실 83개의 작은 호텔이다. 작은 호텔이라는 이유로 주변의 유명호텔은 HOTEL 28의 존재를 애써 무시했다. 2018년 HOTEL 28은 의미 있는 숫자를 기록한다. 연간 가동률은 70%를 상회했고 평균 객실료는 16만 원을 넘었다. 명동의 중심부 호텔에서는 가장 높은 단가를 기록했다.


지출 규모가 적은 관광객만 명동에 숙박한다는 주변의 주장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물론 투자비용과 규모에 있어 길 건너 롯데호텔이나 웨스틴 조선과 같은 전통적인 5성급 호텔과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스스로 브랜드를 만들고 좋은 호텔을 찾는 다양한 고객층을 흡수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며 브랜드의 가치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중저가 로컬 브랜드의 갑작스러운 공급과잉이 있었던 최근 몇 년간의 한국 호텔의 형태로 볼 때 매우 의미 있는 도전이었다.


최근 놀라운 HOTEL 28의 현실은 또 다른 시사점을 확인해 준다. 주변 호텔과 같으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명확히 다른 현상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바로 중국 본토의 FIT 고객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중국인 방한객 중 일정 수준 이상의 투숙객이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일 HOTEL 28을 OTA를 통해 정보를 취득하고 예약을 하며 투숙을 한다는 현상은 뉴욕과 런던 등의 유명 부티크 호텔에서 벌어지는 마켓의 특징이기도 했다.


저가의 호텔을 선호하는 다수의 중국인 관광객이 그에 걸맞는 명동의 호텔에 흡수되는 동안 좋은 호텔을 선호하는 나름 차별화된 소수의 중국인 관광객에게 HOTEL 28은 경험해 보고 싶은 숙박시설이자 문화였고 그 효과는 서서히 눈에 띄기 시작했다. 서울의 유일한 Small Luxury Hotel(SLH) 소속 호텔로 마케팅을 확대한 전략도 이 부분에서는 효과를 보기 시작한 듯하다. 싸고 대중적인 것도 나름 의미를 갖지만 작더라도 비싸고 좋은 것을 만들며 다양함에 일조하는 우리 브랜드의 호텔이 갖는 도전의 의미는 지금의 한국호텔업계에는 절실하리 만큼 큰 의미를 갖는다.




할 일이 많아 오히려 부러운 HOTEL 28

HOTEL 28를 고민스럽게 만든 오픈 초기부터의 과제는 호텔 내 시그니처 다이닝(Signature Dinning)이었다. 경험과 운영에 대한 우려로 호텔의 스토리에 걸 맞는 자기 레스토랑을 갖지 못한 채 출발을 했고 좋은 파트너라 믿었던 외부 조력자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지금은 실험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한국의 전통주와 한식으로 특화된 ‘월향’에게 막중한 호텔 파인 다이닝의 역할을 맡기고 있다. 외국인에게 어필하기 좋은 조합으로 기대할 만하다.


아직 예리하게 날을 세우지 못한 호텔의 영업력은 주변의 기업과 다양한 마켓에 호텔의 스토리와 브랜드의 가치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로 보인다. 영업력을 보완하기 위해 각종 시스템을 구축하고 연동해 OTA 시장에 집중하던 전략이 지금까지는 효과적이었으나 다양한 마켓에 호텔의 브랜드를 확산시키는 일은 지금부터 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호텔의 주변을 둘러싼 고층빌딩에서 내려다보이는 HOTEL 28의 루프톱은 명동의 어느 호텔도 갖지 못한 엄청난 광고판과 같다. 날이 좋은 저녁, 그 루프톱에서 신나게 파티를 즐기는 젊은 무리를 상상하면 루프톱은 HOTEL 28의 무서운 복병으로 느껴진다.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은 아직은 신인배우 같은 호텔이다.


하나하나 일궈가는 발전의 과정이 어느 호텔보다 더 기대되는 이유는 HOTEL 28이 아직은 척박한 한국의 부티크 호텔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앞선 발걸음을 보이며 길을 제시하는 의미를 지닌 곳이기 때문이다. 응원 받아야 하고 받은 만큼 훌륭한 브랜드로 역할을 해줄 책임을 지닌 곳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명동지역에 자랑할 만한 문화를 만들어가려는 초심을 응원하며 힘을 실어줄 충분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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