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작은 호텔의 시대 ①] 동네호텔의 모범을 제시한 Handpicked Hotel & Collection

상도동을 선물로 만들어 주는 곳



(자료: 핸드픽트 호텔)


외딴 곳에서의 특별한 시간을 오롯이 담아줄 공간. 메마른 표현으로는 숙박업소라고 묶어 얘기하기도 하고 그 중 ‘호텔’이라는 등록명을 일반적 통칭으로 사용하게 된 이 호텔이라는 곳은 잠시 머물며 짐을 푸는 이들의 다양한 변화와 기대보다 한발 앞서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설레는 고단함을 받아들여야 한다. 기가 질릴만큼 크고 웅장하고 명성 높은 호텔에서의 숙박이 자랑이었던 시대는 특별한 하룻밤을 기대하는 다양한 정서적 상상력을 장착한 사람들의 힘에 밀려 점점 촌스러운 관습처럼 쪼그라들고 있다.


호텔은 이용자를 정서적으로 만족시켜야 하는 시대에 접어 들었다. 공간을 만든 이들의 생각과 그것이 묻어나 있는 곳곳에 감동하고 싶은 시대가 된 것이다. 그 감동이 발생할 확률을 높게 지니고 있는 곳들이 ‘작은 호텔’이라는 비정형적인 묶음으로 한국에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작음은 뜻 높은 이들의 완성도를 높이는 적당함으로 작용해 충분히 빛을 발할 수 있는 규모다. 그 작은 호텔이 응원 받고 성장하고 튼튼한 저변으로 자리잡는 일은 여러 이유에서 한국에서는 매우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다. 


다양함을 추구하는 세상의 변화를 받아내기에는 우리의 호텔들은 아직 느린 걸음을 지속하고 있다. 새로운 시도나 자기생각의 실천보다는 눈앞의 실효성과 성공한 사례의 도입을 우선시하고 있다. 우리 앞에 밀려들어올 사람들이 찾는 바를 한발 앞서 기다리고 있는 작은 호텔들을 지금 이 시점의 기록으로 남겨 두고자 함이 ‘이제는 작은 호텔의 시대’의 연재 이유다.


상도동은 일정 수준 이상의 호텔을 짓기에는 위험한 지역이다. 사방은 호텔 소비층이 없는 중산층 중심의 주택가이고 도로상황은 정체가 빈번하다. 호텔이 위치한 지역은 그나마 3종 일반주거지역에 속해 있으니 근린생활시설이나 주택시설로 만들어 월세나 받으면 흡족할 지역이다. 그곳에 2016년 호텔이 들어섰다. 호텔근무 경험 좀 있다고 건방을 떨던 필자는 ‘새로운 러브호텔의 탄생인가?’라며 비웃었다. 방문의 기회가 생겼다.


7호선 장승배기역과 신대방삼거리역의 정확히 중간지점에 위치해 어느 역에서 내려도 10분 정도는 걸어야 한다. 차를 몰고 늘 막히는 상도로로 접어들었다. 이상하게 호텔을 찾을 수 없었다. 간판은 보이지 않았고 몇 차례나 상도로를 왕복해야 했다. 분명 도로와 붙은 호텔이라고 했는데 계속 호텔 앞을 지나쳐야 했다.


호텔에 어렵게 도착하고 호텔의 경영주이자 총지배인인 김성호 대표를 만났고 그와 꽤 긴 시간 호텔을 둘러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나의 시건방이 고개를 숙이기까지는 호텔 안에 들어선지 불과 한두 시간 안팎이었다.


10층 규모의 이 호텔은 상도로를 지나며 만날 수 있는 가장 높은 건물 중의 하나다. 그럼에도 호텔이 눈에 띄지 않았던 이유는 그 큰 덩치를 마술처럼 동네 주변에 은폐시켰기 때문이다. 휘황한 네온 간판도 없다. 도로변과 오래되고 낮은 붉은 벽돌의 상가, 높은 층수의 호텔은 그저 위화감 없는 한 풍경의 그림으로 각인되기에 충분했다. 호텔 옆면을 감싼 붉은 벽돌과 앞면에 배치한 진회색 벽돌, 앞면 층간과 객실의 구분 선으로 사용한 검은색 철판의 구성도 건물의 차별성과 주변의 조화를 한꺼번에 이뤄냈다. 건물의 상층부는 전면에 유리를 부착했다. 호텔 외관에서 튀지 않는 세련됨이 느껴지자 핸드픽트의 정성과 저력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업주와 건축가의 고민과 철학이 건물에 묻어나 있다.


아련한 기억 속의 풍광을 담다

호텔 1층은 호텔에 들어서는 고객을 환영하기 위한 높은 천고의 로비와 붉은 벽돌의 벽에 김우진 작가의 ‘헌팅 트로피’라는 사슴 상반신조각이 걸려 있다. 겉보기에는 화려한 상징물이어도 주변의 흔한 플라스틱을 이용해 만든 작품이다. 프런트 데스크는 드나들 고객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9층에 자리 잡았다. 대부분의 건물주가 고민하듯 ‘유동인구가 많은 건물의 1층에 편의점이라도 임대를 주면 운영의 빠듯함에 위로라도 될 텐데’와 같은 고민은 Handpicked Hotel &Collection(이하 핸드픽트)에게는 잡생각이 되어 버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프런트와 메인 레스토랑이 위치한 9층에 도착하자 놀라운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체크인을 하기 위해 서있는 위치에서, 밥을 먹기 위해 앉아 있는 테이블에서 눈앞에 펼쳐지는 창 밖 상도동의 모습은 이미 기억에서 지워졌다고 생각한 오래 전 늘 봐오던 서울의 아련한 풍광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오래된 서울의 양옥집 골목 어딘가에 뛰어 놀고 있는 어릴 적 친구들이 보일 듯 했다. 마치 선물같은 핸드픽트의 풍광은 나만의 것이기에는 아까웠다. 핸드픽트는 솔직한 서울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여줄 핫 스팟이다. 상도동은 더 이상 아파트단지가 들어설 수 없는 근린재생사업단지로 지정되어 있다는 김 대표의 설명에 안도감이 드는 것을 보니 순간의 시간에 애착이 생겼음을 알 수 있었다. 묘한 호텔이다.



(자료: 핸드픽트 호텔)


상도동의 한 부분. 이곳은 호텔이 아니다

호텔에게 풍광을 제공한 상도동에게 핸드픽트는 필연적인 오랜 속내를 실천하고 있다. 지하 1층에 위치한 갤러리공간은 동네주민에게 문턱이 없다. 호텔 입구에 설치된 간판에는 행여 동네 어르신들이 어렵게 여길까 염려스러워 호텔이라는 명칭을 빼버렸다. 외부에서 지하 1층으로 바로 연결될 계단이 건축의 한 부분으로 설치되어 있고 앉아 쉴 수 있는 긴 소파와 문승지 작가의 합판의자 작품이 자리한 갤러리 공간은 추운 겨울을 녹일 파이어 박스와 함께 동네 사람들과 호텔 고객들이 함께 어울리는 공간으로 자리했다. 실제 그 곳에서는 손자를 데리고 호텔로 마실 나온 상도동 할머니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호텔을 구상하고 만들어낸 김성호 대표는 3대째 상도동에서 살고 있는 상도동 토박이다. 그는 그가 자란 상도동에 내린 자신의 정서적 뿌리를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이다. 단순히 사업을 위한 계산법으로는 해석될 수 없는 정성과 고민들이 철학이 되어 핸드픽트라는 공간에서 생각을 실천하고 있다.


할아버지 때부터 경영하시던 주유소 자리에 과감히 동네와 함께 할 수 있는 호텔을 만들어낸 그의 시도와 핸드픽트의 진화과정은 어딘가에 지어져야만 생명이 시작되는 호텔이라는 사업의 근본적인 특징을 어떻게 접근하고 해석해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고민하고 실천해야 하는지 그 쉽지 않은 모범사례를 세상에 보여주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핸드픽트는 호텔이 아니다. 지금의 시대에 중요한 화두가 되어버린 사람들이 활용할 ‘공간’에 대한 고민의 커다란 실험실이다.


멈추지 않는 시도, 그리고 좋은 호텔의 좋은 성적표

총 43객실의 작은 호텔이다.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어 임대료에 대한 부담을 덜어낸 대신 오너의 철학을 실천하기 위한 초기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었다. 객실 수가 적으니 손익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선하고 영민한 김성호 대표가 의미 있는 일을 상도동에서 펼치는 것은 사실이나 핸드픽트 역시 사업의 영역인 이상 손익이라는 성적표로 평가 받을 수 밖에 없다.


주요 상품인 객실은 훌륭하다. 화려한 건축자재와 최첨단 시설로 구성된 5성급 호텔의 객실과는 당연히 차이가 나겠지만 충분히 핸드픽트의 철학을 담을 수 있는 연장선상에서 객실은 구성 되었다. 백색의 바탕에 조화를 이룬 나무바닥과 가구는 꽤 수준 높은 미니멀리즘에 근거한 인테리어를 보여준다. 8개의 룸 타입의 차별성도 단지 평수를 계산하는 단순함에서 벗어나 각각의 타입이 고객에게 전달하고픈 메시지의 흔적이 보인다. 욕실을 장식한 양각의 흰 타일은 유행에 흔들리지 않는 고집 속에서도 세련됨을 유지하고 고급 비데의 설치와 그 비싼 헤븐리베드 매트리스를 도입한 것도 고집스럽다.


핸드픽트의 더 놀라운 고집은 침구에서 나타난다. 핸드픽트는 자체 브랜드를 달고 주문 제작된 ‘핸드픽트 구스’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손님의 몸에 닿을 가장 기본적인 제품에는 무리를 해서라도 고급 제품을 사용했다. 모든 고객이 사용하는 객실 내 용품은 스위트 타입이나 일반 타입을 차별하지 않고 동일하게 제공한다. 이 역시 배려가 아닌 호텔에 대한 철학이다.



(자료: 핸드픽트 호텔)


호텔 운영시스템과 홈페이지의 예약 엔진(Book⁻ing Engine), 판매망의 관리 방식은 지금부터 고민해야 할 숙제다. 호텔 인지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는 반면 매출은 급성장하질 못하고 있다면 이때 고민해야 하는 것은 프라이싱이다. 적어도 OTA 시장에서는 핸드픽트의 가치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가격대가 형성됐다.


운영 3년 차인 핸드픽트의 경영성적표는 사실 놀라운 결과치를 갖고 있다. 호텔의 오너는 호텔이 낼 수 있는 수익의 호흡을 길게 가져가는 교과서적 운영에 충실했다. 매년 평균 40% 정도의 매출 신장세를 이어나가며 무리하지 않는 지속적인 성장을 추구한 결과, 2018년도 가동률은 80%에 육박했다. 핸드픽트가 장착한 다른 중소형 호텔과의 본질적 차이는 식음 매출이다.


호텔 전체 매출의 반이 핸드픽트의 파인 다이닝인 나루와 볼룸, 그리고 연회행사에서 나온다. 좋은 호텔에 반드시 있어야 할 좋은 음식과 공간을 고집스럽게 지키고 있다. 이 역시 초조함 보다는 천천히 알려지게 될 것이라는 스스로의 믿음을 갖고 본질에 충실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 핸드픽트의 실력이 되고 자산이 되어가고 있음을 호텔 전체의 경영상태가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핸드픽트는 2018년 영국 라이프 스타일 잡지로 유명한 '모노클'에서 발간한 모노클 가이드 숙박 시설에 세계의 100대 호텔로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처음 소식을 접하고는 믿기지 않았지만 응원 받아야 할 곳이 응원 받고 있다는 기쁨은 지금도 여전하다. 동네 호텔의 모범인 핸드픽트에서 하룻밤을 경험하는 일은 결코 아깝지 않다. 그 하룻밤에 덤으로 상도동과 친구가 될 수 있는 경험도 따라온다.


호텔 입구에서 세월과 호흡을 함께하고 있는 담쟁이 덩굴에서 루프톱 중앙 벽에 그려진 상도동 하늘과 조화로운 앤드류 햄의 그라피티 아트 '영원한 사랑'에서 호텔이 고객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정서적 공감대의 정성을 느낄 수 있다. 작지만 풍부한 호텔 핸드픽트의 앞으로의 성장은 좋은 호텔을 간절히 바라는 많은 고객들에게 즐거운 기대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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