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로 떠난 가족여행에서 발견한 '누구'와 함께하는 의미



“나 다음 달에 여행가.” 

“어디로 가는데?” 

여행을 떠난다고 하면 대부분 지인의 관심은 그가 어디로 떠나는가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진다. 보통의 대화는 이렇다. 누구도 그가 왜 가는지, 누구와 가는지를 먼저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런 물음처럼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 역시 여행을 떠올리고 생각했을 때 장소를 먼저 생각한다. 사실 주어진 시간, 예산에 한계가 있기에 현실적으로는 ‘어디로 갈 것 인가’가 맞을지도 모르지만 내 생각에 여행에서 더 중요한 것은 ‘누구와 가느냐’다.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여행을 하면서 느낀 것은 바로 ‘누구와 떠나는가’가 정말 중요했다는 것이다.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맞게, 현실에 맞게 여행의 다른 여건은 맞출 수 있지만 ‘누구와 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여타의 현실적인 것과는 다른 문제다. 나는 이를 ‘마음의 문제’로 본다. 다른 한편으로는 여행을 완성시키는 마지막 단추이기도 하다.


결국 여행은 추억이고 그 추억을 남겨주는 건 사람이었다. 몽마르뜨 언덕에서의 노을이 어땠는지, 피사의 사탑이 어느 정도 기울어져 있는지,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은 여전히 짓고 있는지. 이런 것보다 그 순간을 함께 한 사람, ‘그때 걔가 사진을 이렇게 찍었는데’,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난 뭘 먹고 싶었는데 걘 그걸 싫어해서 한참을 싸웠는데’와 같은 사람과의 추억이 결국 여행의 순간을 오랫동안 장식한다.


가족여행의 의미 

그런 의미에서 가족여행은 참 특별하다. 부모님을 모시고 가는 여행 혹은 나의 아내, 자녀와 함께 떠나는 여행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우리의 모습과는 분명 다르고, 그 추억을 오랜 시간 공유할 사람들이기에 좀 더 신중해진다. 나 역시 다양한 여행을 다녔지만 가족여행에 있어선 초보 여행가이다. 나만 좋다고 여기저기 다녔지 정작 부모님과 함께 떠난 여행은 없었다.


우리 가족 모두 같이 해외여행을 떠난 적은 없었고 국내여행도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오래 전인 초등학교 때 떠난 여름 휴가 정도였다. 가족여행의 아쉬움은 결혼을 하면서 많이 줄었다. 신혼 여행부터 시작해 아이가 태어난 뒤로는 자연스럽게 많은 경험을 하게 해주고 다양한 곳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아이와 함께 해외여행을 다니게 됐고 장인어른, 장모님을 모시고 떠나는 여행도 많아 졌다. 그만큼 추억도 많아졌지만, 아직까지는 여전히 초보여행가다.


초보 여행가임을 강조하는 이유는 가족여행이 그만큼 다른 어느 여행보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의 20대, 30대가 떠난 여행의 주인공은 바로 자신이다.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일, 먹고 싶은 것들을 즉흥적으로, 혹은 계획 세워둔 대로 해 나가면 된다.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누굴 탓하지 않는다. 결국 본인의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족여행의 주인공은 한 사람이 아니라 가족 전체다. 이런 경우는 분명 달라진다.


올 추석 연휴, 거제에서 올라오신 장인어른, 장모님을 모시고 두 돌이 되지 않은 아이와 함께 떠나는 발리여행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발리에서 어떻게 시간을 쓰며 여행할지는 전적으로 내게 맡겨졌다. 아무래도 다른 가족보다는 많은 여행을 많이 다녀봤으니 어찌 보면 당연하겠지만, 나 역시 발리는 처음이었고 가보지 않은 곳에서 모두가 만족하는 계획을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족여행의 주인공은 ‘가족’ 자체 

몇 가지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은 ‘이동거리 혹은 이동시간이 길지 않을 것’, ‘아이가 먹을 만한 음식이 있으면서 어르신 입에도 잘 맞을 것’, ‘너무 타이트한 일정보단 여유로운 일정일 것’, ‘그러면서도 가볼만 한 곳이나 꼭 맛보면 좋을 것들은 넣을 것’, ’유명 포토 스팟’ 등. 3대가 함께 떠나는 가족여행은 정말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았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철저하게 계획해 루트나 일정을 정하라고 강요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이왕 다같이 시간 내서 맞춰 가는 여행, 모두가 만족하는 여행을 만들고 싶었다. 처음 가보는 지역이어서 검색에 의존하게 됐는데 아무리 검색을 해도 원하는 정보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보통의 여행지 콘텐츠는 사진 찍기 좋은 장소거나 맛집 위주인데 이곳이 혹시 노키즈 존은 아닌지, 아기의자는 있는지, 유모차로 이동하기에 길 상태는 어떤지 그런 정보는 없을뿐더러 ‘핫 한’ 장소라고 나오는 곳 대부분이 장인어른, 장모님을 모시고 가기에는 어려운 장소였다.


한참 동안 국내외 후기들을 둘러보고 계획을 세웠고 결국 모두가 만족할 일주일간의 여행이 완성됐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까지 내 머릿속에 ‘나를 위한 무언가’는 없었다. 여행 중에도 정해진 관광지를 갔을 때 다들 좋아하는지 눈치를 살폈고 음식점에 가서도 혹시 남기진 않는지, 잘 드시는지 등을 살피며 주문에 특히 신경을 썼다. 별로 맘에 들지 않아도 내색하지 않는 건 아닐지 걱정도 했고 말 못하는 아이의 컨디션도 신경 쓰였다. 그렇게 일주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뭔가 큰 숙제 하나를 마친 기분이 들었다.


결국 ‘나’의 행복이고 만족이더라 

이 가족여행이 내게도 과연 여행이었을까. 

정답부터 얘기하자면 내게도 분명 여행이 맞다. 준비하고 여행을 하는 동안은 그 과정을 많이 즐기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다녀와서 사진을 둘러보고 정리하다 보니 나 역시 굉장히 행복했던 여행이었다. 패키지 여행보다는 불편했을지 몰라도 우리 가족만의 여행을 했고 함께 한 가족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위해 누구도 시키지 않은 계획을 세운 것이었다.


그 보람을 느끼기 위해서, 그들의 행복을 위해서 내가 노력하는 것, 어찌 보면 내가 여행을 하는 이유는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였는데 결혼 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나 혼자 행복한 것보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 행복을 느끼게 될 때 내가 더 큰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다. 결국 난 나의 행복을 위해 그런 치밀한 계획을 세웠고 그건 나를 위한 여행이었다.


여행은 어딘가에 가서 무언가를 보고 무언가를 먹고, 무언가를 하는 행위다. 하지만 그런 것 이전에 그 모든 것을 누구와 누릴 것인지에 대해서도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특히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여행보다는 좀 더 특별한,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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