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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만난 사람들 ①] 넓은 세상에서 실패를 배웠다

호텔업 | 2018-06-28

“제 트랙터 여행은 수많은 실패의 연속이었죠. 절대로 한 번에 성공한 적이 없습니다. 트랙터를 협찬 받기 위해서 누구를 찾아가야 할지 어떠한 방법으로 새로운 트렌드의 여행을 만들어야 할지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우리의 인생길도 실패로 점철된 트랙터 여행과 같지 않을까요?”

글 강기태 여행대학 총장

트랙터 여행가로 통하는 강기태 여행대학 총장은 2008년 9월부터 2009년 3월까지 6개월간의 국내 트랙터 일주, 2012년 터키 트랙터 횡단, 2013년 중국 트랙터 종단, 2015년 미얀마 전역을 트랙터로 여행한 세계 최초의 인물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남다른 실패력(?)이 있다. 

트랙터 여행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트랙터’ 협찬이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농기계 회사 관계자는 물론 연예인 노홍철, 지역구 국회의원, 농대 교수, 농기계 학회 회원, 의류 회사, 자선 단체 등에 여행계획서와 편지를 보냈지만 수 차례 퇴짜를 맞았다. 실패력, 퇴짜력, 그가 겪었던 다양한 실패의 여정들, 에피소드, 협찬 요청 편지글 등 트랙터 여행 이전에 숨어있는 실패의 이야기들을 2부에 걸쳐 처음으로 공개한다. 협찬을 받기까지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는 크게 ‘5번의 트랙터 협찬 시도’를 감행했다. 물론 실패였다.

1차 트랙터 협찬 시도-‘대동공업’ 트랙터 1위 회사 방문하기(2005년 11월)
오래 전 일이었다. 2005년 대학교 4학년 때, 고등학교 동창 친구 김수환과 남아메리카를 트랙터로 종단해볼 계획을 세웠다. 영화 ‘체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보고 무턱대고 계획한 일이었다. 

“수환, 체게바라 형님과 알베르트 형님처럼 세계를 활주할 수 있을까?”
“이봐, 우리도 할 수 있어. 모터사이클로 유럽을 가볼까, 아님 남아메리카를 가볼까?”
“모터사이클로? 아냐, 그건 너무 쉬워. 그래, 우리 경운기로, 아니, 트랙터! 트랙터 타고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까지 남아메리카 4,000킬로미터를 한번 달려보는 건 어때?”

말도 안 되는 미친 계획이었다. 남아메리카 트랙터 종단 프로젝트인 ‘The Road to El Dorado - 가슴 속의 황금향을 찾아서’가 시작됐다. 

우리는 트랙터가 필요했다. 먼저 트랙터 스폰서를 구하기 위해 프로젝트 자료를 만들어야 했다. 아주 두꺼운 파워포인트 가이드북을 구해와 밤새 연습을 하고서는 13페이지 분량의 계획서를 만들어냈다.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형편없는 자료였다. 하지만 준비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이제는 국내 굴지의 농기계 회사를 찾아갈 차례였다. 

‘어떤 회사를 먼저 찾아가볼까? 어느 회사가 우리에게 트랙터를 협찬해 줄 가능성이 클까?’

고민하던 중, 우리는 결론을 내렸다. 그 당시 국내 트랙터 분야 1위 업체를 찾아가는 것이 타당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왜냐하면 아무래도 타 트랙터 회사보다 수익을 많이 창출하고 있기 때문에 트랙터를 지원해 줄 자금여력, 협찬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높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 트랙터 회사의 위치를 홈페이지로 확인했다. 서울 남부터미널 근처였다. 우리는 트랙터 회사를 방문하기 전, 트랙터 회사의 홍보부서나 기획부서에 사전 연락을 하지 않았다. 만약 사전 연락을 취했을 경우, 그 담당 직원이 궁금하지 않다며 오지 말라고 통보하면 회사 방문 기회조차 얻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13페이지짜리 여행계획서를 들고 대동공업 건물 입구에 들어섰다. 먼저 경비아저씨가 막아 세웠다. 무슨 일로 왔느냐며 물어오기 시작했다. 

“아저씨, 저희는 페루의 수도 리마와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를 잇는 4,000km를 대동 트랙터 타고 여행하고 싶은 청년인데요. 홍보부서나 기획부서 직원 좀 불러주이소.” 

경비아저씨는 대뜸 리마는 뭐고 산티아고는 뭐냐며 빨리 나가라고 재촉했다. 우리는 못 나간다며 30여 분간을 버티며 불러달라고 애원했다. 경비아저씨는 몹시 당황하는 듯 멋쩍은 표정을 끝내지어 보이시고는 이내 수화기를 들고는 담당 부서 직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십 분쯤 지났을까. 흰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맨 홍보부 직원 한 분이 검정색 노트를 손에 쥐고는 내려왔다. 떨렸다. 우리는 여행계획서와 더불어 그 당시 자전거 유럽여행으로 각광받고 있던 여행가의 신문 기사, 그리고 일면식도 없는 유명하지 않은 PD가 촬영을 해줄 수도 있다는 결정되지도 않은 내용을 직원에게 전달했다. 

“저희는 도전정신으로 가득 찬 20대 청년입니다. 세계 최초로 남아메리카를 트랙터로 종단하려고 합니다. 귀사의 지원만 있다면 분명 이루어낼 수 있을 겁니다.”
“기태씨, 정말로 좋은 아이디어네요. 2주 후에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회사 관계자는 우리 앞에서 정말 좋은 아이디어라며 칭찬을 해주었다. 하지만 실제로 2주 뒤에 전화가 왔을까? 아무리 기다려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우리는 대학생 신분으로서 무시를 당한 것 같았다. 대학생 신분이기 때문에 회사 측이 신뢰하지 않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몹시 화가 났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2차 트랙터 협찬 시도-국회의사당으로 지역구 국회의원 방문하기(2005년 11월) 
우리는 다른 방법을 모색했다. 바로 지역구 국회의원을 찾아가기로 했다. 국회의원은 적어도 지역 군민의 소망을 들어줄 명분이나 책임, 의무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지역구민의 대변인 역할로 우리의 부족한 능력과 대학생이라는 신분으로 겪어야 하는 한계를 극복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당당히 국회의사당으로 걸어 들어갔다. 

무시를 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과 함께. 

그 당시, 대학생 신분으로 국회의원을 만나기 위해 국회의사당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청년이 과연 몇 명이나 됐을까?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과연 국회의원을 만날 수 있을까? 경남 하동에서 서울 여의도에 있는 국회의사당까지 찾아가는 것도 힘든 일인데, 화려한 금 배지를 가슴팍에 달고 있는 그들을 만나는 것이 정말 가능한 일일까?’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국회의원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준 어르신, 선배, 친구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저 불확실성에 기대어 단순히 그들에게 찾아가는 것만이 나에게 주어진 단 한 가지 방법이었다. 국회의사당 정문 입구에 들어섰다. 국회 직원이 내 신분증을 검사했고 이내 무슨 일로 왔느냐며 강한 어조로 묻기 시작했다. 조금씩 자신감을 잃어갔다. 나지막하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국회의원을 만나러 왔다고 말했다.

“국회의원과 사전 약속을 하고 오셨습니까?” 

또다시 당황했다.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몇 초간의 정적이 흘렀고 이내 기지를 발휘했다. 

“아니, 경남 하동군민이 경남 하동 국회의원을 만나러 오는데, 반드시 사전 약속을 한 이후에만 만날 수 있는 겁니까? 그렇다면 약속을 하지 않은 지역 군민은 앞으로 영원히 지역구 국회의원을 만날 수 없게 되는 것이네요? 그런 건가요?” 

이번에는 국회 직원이 당황했다. 

“아! 아닙니다. 그러고 보니 맞는 말씀이네요. 사전 약속을 하지 않았더라도 지역 군민들은 당연히 국회의원을 만날 권리가 있죠. 지금 바로 의원실에 연락을 하겠습니다.”
 
당당히 국회의원 사무실로 들어섰다. 비서실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대담한 의지를 내비쳤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단 한가지였다. 국회의원이 직접 대동공업 회장실에 전화를 걸어 우리 제안에 힘을 실어주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전화를 걸어주었을까? 실제로 농기계 회사의 회장실로 전화를 걸어 우리 제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변해주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결과는 참담했다. 세 가지 이유를 들어 제안을 거절당했다. 첫 번째는 우리나라에서 남아메리카까지 트랙터를 배로 선적해서 옮기는 문제, 두 번째는 사고가 났을 경우 대학생 신분으로서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는 문제, 세 번째는 트랙터가 고장 났을 경우 등 여행 전반에 걸친 수리 및 제반사항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점을 풀지 못했다.

그러나 이는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었다. 미처 보이지 않았던 문제를 직시하고 현실을 깨달을 수 있었던 하나의 계기가 됐다. 오랫동안 대안을 찾아봤지만 돌파구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매달려 있기를 며칠. 잠시 휴식을 갖기로 하고 그 당시 우상이었던 연예인 노홍철을 만나러 가기로 했다. 물론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기 때문에 이번에도 무턱대고 찾아가기로 했다. 그렇게 또 우리는 무모한 3차 트랙터 협찬 시도를 계획하고 있었다. 

▶강기태 여행대학 총장의 ‘여행이 만난 사람들’ 트랙터 협찬 실패 스토리는 7월호 ‘3차 트랙터 협찬 시도: 노홍철과 의형제 맺기, 노홍철 깃발 협찬 프로젝트(2005년 11월)’에서 계속됩니다.

사진설명(위에서 순서대로)
중국 내몽골 트랙터 일주 중 초원에서 (자료: 강기태 여행대학 총장)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자료: South Fork Pictures)
트랙터 스폰서를 확보하기 위한 첫 단추, 13페이지 분량의 계획서 표지 (자료: 강기태 여행대학 총장)
국내트랙터 일주(자료: 강기태 여행대학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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