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소식
- 박재삼 -
아, 그래
건재약 냄새 유달리 구수하고 그윽하던
한냇가 대실 약방...... 알다 뿐인가
수염 곱게 기르고 풍채 좋던
그 노인께서 세상을 떠났다고?
아니, 그게 벌써 여러 해 됐다고?
그리고 조금 내려와서
팔포 웃동네 모퉁이
혼자 늙으며 술장사하던
사량섬 창권이 고모,
노상 동백기름을 바르던
아, 그분 말이라, 바람같이 떴다고?
하기야 사람 소식이야 들어 무얼 하나,
끝내는 흐르고 가고 하게 마련인 것을......
그러나 가령 둔덕에 오르면
햇빛과 바람 속에서 군데 군데 대밭이
아직도 그전처럼 시원스레 빛나며 흔들리고 있다든지
못물이 먼 데서 그렇다든지
혹은 섬들이 졸면서 떠 있다든지
요컨대 그런 일들이 그저
내 일같이 반갑고 고맙고 할 따름이라네
-
고향
- 백석 -
나는 북관에 혼자 앓아 누워서
어느 아침 의원을 뵈이었다
의원은 여래같은 상을 하고 관공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집더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 정주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씨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씨를 아느냐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막역지간(莫逆之間)이라며 수염을 쓸는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다시 넌즈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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